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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17-09-11
코스닥 CEO 도전스토리 진성티이씨 윤우석 회장

※ 본 자료는 코스닥협회에서 발간하는 "코스닥 CEO 도전스토리"에 게재된 당사 윤우석 회장님의 이야기 입니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을,
오늘의 책임감이 성공한 내일을 연다

 

KOSDAQ CEO 경영 멘토링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정공법이 아니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어요. 인생과 사업에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축에 꽂는 핀을 린치핀이라 부른다. 너무 작아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도 있으나 린치핀이 없으면 마차가 제구실을 못하므로, 린치핀을 일컬어 핵심축 또는 꼭 필요한 동반자라 비유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며, 세상을 바꾸어놓는 부품은 비단 린치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황무지를 개척하고 도로를 넓히는 데 사용되는 중장비 역시 특별한 부품이 필요하다. 무한궤도라 일컬어지는 하부주행체를 구성하는 롤러와 아이들러 그리고 톱니바퀴 모양의 스프라켓 등은 중장비에 없어서는 안 될 부품들이다. 이들이 있어 중장비는 거대한 무게를 견디며 열악한 건설 현장을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롤러와 아이들러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 국토를 재건하고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는 한평생 건설 중장비용 하부주행체 부품개발에 주력한 진성T.E.C와 창립자 윤우석 회장이 있다.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그는 ROTC 육군 공병장교로 군복무하던 중 소양댐 공사를 비롯해 각종 토목공사에 참여하며 운명처럼 중장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중장비가 흙먼지를 일으키고 지나가면 도로가 생기고 댐이 건설됩니다. 그 모습이 경이롭고 위대해 보였어요. 언젠가 사업을 한다면 이와 관련된 일에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판사였던 아버지는 자식이 열 명이 되자, 가장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법복을 벗고 은행을 선택하셨다. 덕분에 그는 비교적 윤택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면서 아홉째였던 그가 어머니와 동생을 대신해 실질적인 가장이 되었다. 형제들 대다수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해외에서 유학 중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정릉천으로 이주하게 된 그는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 혼자되신 어머니까지 보살펴드려야 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따르는 자녀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어머니의 뜻에 따라 은행에 입사하게 되었다.
 “상업은행 기업분석과에 입사해 기업의 건전성을 심사했습니다. 5년 동안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 일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럴수록 남의 옷을 입은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장인어른이 운영하던 가내수공업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은행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공장을 인수한 뒤 철도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우리나라는 경제개발5개년 계획 아래 전국토의 농지를 개발하고 있었다. 거대한 굉음을 내며 흙을 퍼올리는 불도저와 굴삭기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중장비의 구조를 알고 있었던 터라 핵심부품인 플로팅 실(floating seal)을 개발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국산화로 인해 가격이 저렴해진다면 즉시 교체가 가능할 테니 건설현장도 안전해집니다.”
 물론 플로팅 실을 국산화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척박한 환경과 엄청난 하중을 견디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국산화에 성공했던 것은 그를 비롯해 다수의 형제들이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한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시장에 나가서 플로팅 실을 직접 팔았습니다. 성능은 그대로 인데 가격은 절반도 안되니,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공장 규모가 커지면서 롤러와 아이들러 개발로 제품군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군복무를 통해 막연하게 품었던 꿈이 현실이 되어 글로벌 기업 진성 T.E.C가 탄생했다. 마치 운명이 그의 삶을 이끌어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우연도 운명도 아닌 자신의 선택 덕분이었다고 술회한다. ROTC 육군 공병장교로 입대한 것도, 중장비에 매료된 것도, 장인어른의 회사를 인수하고 플로팅 실을 개발한 것도 모두 자신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덧붙여 “오늘의 모습은 어제의 선택 덕분”이라고 전했다. 책임감을 갖고 오늘을 살아간다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 자신을 만나게 된다. 땀 흘리는 삶이 운명을 이긴다는 뜻이다.

 

전 세계를 공략한 힘, 열정과 발품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면 건설현장은 잠시 휴식기를 갖는다. 꽁꽁 얼어버린 땅을 파헤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성T.E.C에게 있어 겨울은 길고 긴 춘궁기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시 사철 날씨가 따뜻하면 가을걷이에 나간 농부처럼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동남아시아는 일 년 내내 여름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귀가 솔깃해졌어요. 그 길로 곧장 동남아시아로 떠났습니다. 영등포 시장에서 플로팅 실을 팔았던 것처럼 동남아시아의 애프터마켓에서 딜러를 통해 플로팅 실과 롤러, 아이들러 등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10개, 20개가 고작이었지만 국산 부품을 세계 시장에 판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당시 애프터마켓에서 거래되던 제품 대다수는 일본과 이탈리아 산이었다. 가격은 비쌌지만 뛰어난 품질을 앞세워 견고한 진입장벽을 쌓았으니,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고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승부하고 부지런히 발품도 팔아야 했다.
 단 한 개를 구매할지라도 고객이 감동할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설명했으며, 혹여 불평불만을 토로한다면 최선을 다해 해결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다양한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성능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각 나라의 기후와 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한 결과 글로벌 경쟁력을 쌓아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고객이 원하는 품질, 저렴한 가격 그리고 확실한 애프터 서비스를 실시하자 고객이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메이드 인 저팬, 메이드 인 이태리를 선호하던 고객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찾게 된 것이다.
 “애프터마켓에서 시장점유율 1위가 된 뒤에는 각 나라별로 딜러를 두었어요. 26개국에 딜러가 있어, 그들 전부를 만나면 일 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일 년에 반 이상을 외국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전 세계를 다녔지만 관광지를 다녀본 적은 없었어요. 그렇게 15년을 살면서 세계 곳곳의 애프터마켓을 평정했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정성을 다하면 제품의 장점을 충분히 전달하고, 불만사항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그는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을 지났다. 새까맣던 머리칼은 은빛으로 물들었고,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열정은 어느덧 붉은 노을빛으로 변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그래서 진성T.E.C의 내일이 더더욱 기대된다. 눈품과 발품으로 세계를 공략했던 관록이 빛나는 윤 회장이 뒤에서 밀고, 글로벌 감각을 갖춘 CEO가 앞에서 리드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할 때도 위기를 돌파할 때도 정면돌파로 승부하라

 

 오늘날 진성T.E.C는 연매출 2천억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서 세계적인 장비회사 캐터필러(Caterpillar)와 히타치(Hitachi)건기, 두산인프라코어 등에 제품을 납품하지만 40여 년 전만 해도 작은 가내수공업 회사에 불과했다. 윤 회장 자신이 펄펄 끓는 쇳물을 금형에 부어가며 제품을 만들고, 직접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팔아야 할 정도로 영세했다.
 “창업 초기에 몸은 고생스러웠지만 노력한 만큼 회사가 성장했으니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면서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언제나처럼 땀 흘려 일했을 뿐인데 IMF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서브프라임 사건, 나아가 KIKO사태까지 겪어야 했으니까요.”
 이 모든 시련은 그를 비롯해 임직원의 잘못이 아니었으나, 책임은 온전히 그가 짊어져야 했다. 특히 KIKO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는 청춘을 바쳐 이루어놓은 자회사를 떠나보내야 했다. 진성T.E.C의 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닌 플로팅 실 사업부문을 고객사인 캐터필러에 매각한 것이다.
 “연매출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성장기에 접어들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KIKO상품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빚이 생겼습니다. 다각도에서 해결방안을 모색했지만 액수가 너무 커서, 자회사 매각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어요. 눈물을 보이는 임원진들을 위로하며 5년 뒤에 반드시 다시 찾아오겠다고, 그들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약속했습니다.”
 사실 캐터필러는 세계 최고의 장비회사인 만큼 독자적으로 플로팅 실을 생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성T.E.C의 자회사를 인수한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공법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위기가 닥치면 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정공법이 아니면 위기를 돌파할 수 없어요. 인생과 사업에 지름길은 존재하지 않거든요.”
 정면돌파로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도전할 때도 그는 언제나 정면돌파한다. 그 결과 플로팅 실을 비롯해 롤러, 아이들러 등을 생산하고 있는 장비회사에 같은 종류의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장비회사를 찾아가서 부품만큼은 외주를 맡기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설득했습니다. 불도저, 굴삭기 등을 생산하면서 작은 부품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말입니다. 동시에 요구사항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해결해 주었습니다.”
 언제나 정공법을 선택하는 그이기에 빠른 시간에 승부를 보겠다는 조급함은 없다. 중장비 부품의 경우 2년 동안 강도 높은 테스트를 통과하고 3년의 긴 겨울을 견뎠을 때 비로소 인정받기 때문에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애프터마켓을 공략할 때도 그의 전략은 정공법이었다.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각 나라의 토양, 작업환경, 업무스타일 등을 분석해 고객이 원하는 맞춤 제품을 개발했으니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잘못도 없이 곤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정면돌파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세상과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오늘날 ‘수저계급론’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실에 대해 씁쓸함을 느낀다고 한다. 수저계급론에는 부모님과 사회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출발선이 다르다는 것은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그렇지만 “환경을 원망하기보다는 꿈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이루어가면서 꿈의 크기를 키워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전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긴 여정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기고,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면 해결책은 단 하나,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전 MOST21C로 백년기업을 꿈꾸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과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중장비가 동원된다. 불도저와 굴삭기 등은 지하철을 뚫고 도로를 넓힐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목숨까지 살리는 이기(利器)가 된다. 따라서 부품 하나도 반드시 원칙을 준수해 제작해야 한다. 부실한 롤러 하나가 건설현장을 아비규환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러를 양산했는데, 샘플과 양산품의 두께가 달라 보였습니다. 자로 재어보았더니 5mm가 얇더군요. 이미 출고까지 끝난 상태라 눈앞이 깜깜했습니다. 즉시 각 고객사에 연락해 이실직고 고백한 뒤 전면 리콜조치를 시작했습니다. 수송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로 보내다 보니 수십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지만 덕분에 신뢰를 쌓아나갔습니다.”
 이처럼 그는 40년간 한결같이 신뢰경영을 원칙을 지키고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더 나아가 21세기를 맞이하며 열린경영, 스피드경영, 기술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비전 MOST21C’를 선포하고 전 직원이 이를 공유한다. 임직원이 똘똘 뭉쳐 한 목소리를 낸다면 이루지 못할 과제도, 뛰어넘지 못할 난관도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장밀착경영, 기술중시경영, 스피드경영으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지향하지만 임직원에게 성과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소 실력이 부족한 직원이 있다면 윤 회장이 앞장서서 걸림돌을 치워준다. 물론 성과는 온전히 직원의 몫으로 돌린다. 임직원은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몰랐던 잠재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해외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이 영어가 서툴렀어요. 제가 사전에 연락해 영업을 성사시켜놓은 뒤 직원을 보냈습니다. 성과를 내고 돌아오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정말 대단하다, 훌륭하다’고 칭찬해 줍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평범했던 그가 비범한 인재로 변하거든요. 그래서 진성T.E.C의 임직원들은 학벌과 스펙을 초월해 모두가 훌륭한 인재입니다.”
 하버드대학교 토머스 드롱 교수의 말처럼 “기업의 성패를 결정하는 직원은 인력의 60~80% 차지하는 B급 직원”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를 터득한 윤 회장은 B급이라 불리는 직원들이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끌어주며 격려해 주고 있다.
 회사 역시 그에게는 딸 같은 존재다. 회사를 떠난 제품이 고객사에서 잘 사용되고 있는지 혹여 미움을 받는 것은 아닌지, 늘 불안하고 걱정스럽다. 동시에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임직원과 제품 모두 자식과 같은 존재이니, 회사는 윤 회장 자신에게도 임직원들에게도 꿈과 행복을 이뤄주는 또 하나의 가정이다.
 “회사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가 먼저 희생하고 모범을 보여야 해요. 자식이 어긋난 행동을 한다거나, 직원들이 청렴하지 못하다면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하는 것이죠.”
 시련이 닥치면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슬기롭게 헤쳐 나갔던 그는 40여 년간 개척자의 자세로 살아왔다. 그사이 가내수공업이었던 회사는 글로벌 히든챔피언이 되었고, 고학생이었던 그 역시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기부하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었다. 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성장이 우리 사회를 이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성공에 이르지 못합니다. 저 또한 제 꿈에 동참하며 땀 흘린 임직원들을 비롯해, 진성T.E.C를 믿고 기꺼이 제품을 구매해 준 고객사들이 있었기에 성장한 겁니다. 뿐만 아니라 국립대학교를 졸업했다면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도움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갚아야 할 은혜가 많다는 뜻입니다. 그 방법은 훗날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작은 선행들을 실천하는 겁니다.”
공부를 할 때, 군복무를 할 때, 사업을 할 때, 나아가 기부를 할 때도 그는 머릿속에 생각이 떠오르는 즉시 실천에 옮겼다. 그리고 하늘이 감동할 때까지 지극정성을 다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진성 T.E.C이다. <끝>

 

 

 

 

 

 

 

 

코스닥 CEO 도전스토리_진성티이씨 윤우석 회장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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